![[박수남의 IR리포트 11] 덕양에너젠 - 기업 분할, 승계, 그리고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유산](https://cdn.ceomagazine.co.kr/news/photo/202508/33962_29548_3031.png)
[CEONEWS=박수남 기자] 한국 증권시장은 기업공개(IPO)의 활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5년 IPO 일정은 이미 수많은 기업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으며,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언론과 시장의 관심은 더핑크퐁컴퍼니와 같은 소위 '대어급' 딜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투자자 자본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은 화려한 조명을 받는 기업이 아닌,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난 중견 기업들의 복잡한 이면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본 보고서의 핵심 논지는 IPO 시장에서 투자자가 직면하는 가장 큰 위험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위험은 복잡하게 얽힌 기업의 역사, 불투명한 재무 구조 조작, 그리고 실체가 모호한 사업 모델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분석의 가장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도구는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이다. DART는 기업이 대중에게 공개하는 정제된 홍보성 자료와는 달리, 필터링되지 않은 기업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일한 정보원이다. 본 보고서는 DART에 공시된 자료를 기반으로, 기업이 제시하는 장밋빛 청사진과 실제 재무적 현실 사이의 괴리를 파헤치는 분석 방법론을 제시할 것이다. 현재 IPO 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부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많은 IPO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은 '분석 피로'에 직면하게 되고, 이는 주관사가 제공하는 단순화된 투자 논리에 의존하게 만드는 구조적 취약점을 낳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위험한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생긴다. 본 보고서는 바로 그 분석의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상장 프로세스의 구조적 허점 – 위험의 관문
리스크가 높은 기업이 증시에 입성하는 경로는 제도 자체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합법적인 상장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제도는 그 본질상 재무적 안정성보다 미래 가치나 성장 서사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잠재적 위험을 전가할 수 있다.
기술특례상장의 역설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당장의 수익성보다는 기술적 잠재력을 가진 혁신 기업에 자본 조달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 제도를 통해 바이오, IT 등 첨단 기술 분야의 수많은 기업이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으며, 2020년 25개사에서 2023년에는 35개사로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제도가 혁신 생태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제도의 이면에는 심각한 통계적 현실이 존재한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상당수가 상장 이후에도 유의미한 매출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관리종목 지정 요건에 직면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기술의 잠재력과 상업적 성공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기업들은 종종 전문 평가기관으로부터 받은 'A' 또는 'AA' 등급을 마치 성공 보증수표처럼 홍보한다. 하지만 이 등급은 상장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기업의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 능력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기술적 타당성이 곧 경제적 생존 능력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점은 투자자가 반드시 인지해야 할 핵심적인 함정이다. 결국 이 제도는 재무제표라는 객관적 지표 대신 '기술'이라는 주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평가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본질적으로 서사 중심의 고평가(Valuation) 환경을 조성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스팩(SPAC) 합병이라는 뒷문: 상대적으로 완화된 검증 절차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은 전통적인 IPO 방식에 비해 자금 조달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증시에 상장된 스팩이 보유한 자금을 활용하므로, 비상장기업은 시장 상황에 따른 공모 흥행 실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스팩 합병은 IPO의 대안 경로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으며, 다수의 스팩이 합병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성은 종종 완화된 검증 절차라는 대가를 치른다. 전통적인 IPO가 거래소의 엄격한 상장 심사와 다수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을 통해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반면, 스팩 합병의 가치 평가는 본질적으로 비상장기업과 스팩 스폰서 간의 사적인 협상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책정된 합병 비율이 반드시 공개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합리적인 가치라고 보장할 수 없다. 더욱이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된 기업들의 주가는 합병 이후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스폰서와 초기 투자자들이 합병 직후 차익을 실현하고 시장을 떠나면서 발생하는 수급 불균형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으며,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전가된다. 기술특례상장과 마찬가지로 스팩 합병 역시 기업의 내재가치보다는 '거래' 자체의 성사에 초점을 맞추게 될 위험이 있으며, 이는 투자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구조적 리스크를 안겨준다.
숨겨진 위험 신호 포착
언론의 헤드라인에 오르지 않은 기업들의 공시자료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면, 투자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위험 신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 세 가지 사례는 복잡한 기업 분할, 과도한 부채를 통한 성장, 그리고 실체 없는 기술 서사를 통해 기업가치를 부풀리려는 시도가 어떻게 투자자에게 위협이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덕양에너젠 – 기업 분할, 승계, 그리고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유산
기업 개요 및 IPO 현황: 덕양에너젠은 산업용 수소 가스 공급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기업으로, 2025년 8월 4일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을 주관사로 하여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사업 자체는 국가 기간산업에 필수적인 요소로 안정적인 외형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분석
2020년 인적 분할의 재구성: 덕양에너젠의 분석은 2020년 11월 모기업인 (주)덕양으로부터의 인적 분할 사건에서 시작해야 한다. IPO를 불과 몇 년 앞둔 시점의 기업 분할은 그 자체로 중대한 위험 신호(Red Flag)다. 이 분할의 전략적 의도를 파고들 필요가 있다. 특정 자산이나 부채를 분리하여 상장 주체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재무적 조작이었는가? 혹은 창업주 가문의 2세 경영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재편의 일환이었는가? 모기업인 (주)덕양 자체가 수십 년간 수차례의 사명 변경과 구조조정을 거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의구심을 더한다.
지배구조와 승계 문제: 창업주 이덕우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 분할된 기업들은 이치윤, 김기철 등 2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분 구조는 창업주 가문 및 특수관계인에게 100%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지배구조는 향후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소액주주의 이익보다는 지배 가문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위험을 내포한다.
특수관계자 거래와 상호 의존성: 분할된 3개사(덕양, 덕양가스, 덕양에너젠)는 수소 가스 생산 및 유통이라는 동일한 가치 사슬 내에서 운영된다. 이는 세 회사가 법적으로는 분리되었을지라도, 운영 및 재무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한 상호 의존 관계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DART 공시를 통해 이들 관계사 간의 비정상적인 내부거래(예: 용역비, 원재료 매입 단가 등)가 존재하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과거 맥쿼리PE가 그룹 전체를 약 8,000억 원에 인수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실질적으로 단일 경제 공동체임을 방증한다.
밸류에이션 검증: 덕양에너젠은 2025년 4월, 약 1,8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2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 밸류에이션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 가치는 덕양에너젠이라는 단일 기업의 펀더멘털에 기반한 것인가, 아니면 상장 이후 일반 주주들은 공유할 수 없는 관계사 간의 시너지를 포함한 가격인가? 2024년 기준 매출액 1,373억 원이라는 재무 실적과 비교했을 때 , 1,800억 원이라는 가치가 과연 합당한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덕양에너젠은 'IPO 준비를 위한 재무적 공학'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IPO 직전에 단행된 기업 분할은 외부 투자자들에게 정보의 비대칭성을 야기하는 인위적인 장벽을 만든다. 투자자들은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덕양에너젠)만을 보고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상장 이후, 공개 기업의 가치가 불투명한 내부거래를 통해 비상장 관계사로 이전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상존한다. Pre-IPO 단계의 밸류에이션은 일반 투자자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진 내부자 및 기관투자자에 의해 설정된 기준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