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과 직결된 경제 문제들은 법적 안팎에서 늘 뜨거운 감자가 됩니다. 문제 이면에는 치열한 법리 싸움이 빚어지고 있거나 사각지대라는 공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정 안에서는 법률에 기반한 해결책이 모색되고 법정 밖에서는 사회적 합의나 정책적 논의가 이뤄지는 이유이지만 모든 게 이상적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법정 안팎] 코너는 법조계 전문가의 눈으로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며 통찰을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피해회복 관련 양형인자 정비안’을 최종 의결했다. 선고 직전 감형만을 노린 기습 공탁이나 실질적 회복 없는 형식적 합의를 양형에서 엄격히 가려내겠다는 취지다.
어렵게 들리지만 취지는 분명하다. 범행 이후 피해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회복되었는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어떤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중요하게 보겠다는 뜻이다.
형사 사건을 대리하다보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결국 합의가 가장 중요한가요?”라는 물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대법원 양형기준에서도 피해 회복과 합의가 거의 모든 범죄에서 가장 강력한 감경 요소다. 양형인자 정비안까지 대법원이 다시 마련하는 건 그만큼 합의가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실무를 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합의’라는 단어 속에 피해자의 의사와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을 섞어 쓴다. 그래서 이 두가지부터 정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친고죄의 경우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사건 자체가 종결된다. 따라서 고소취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의사불벌죄 또한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국가가 처벌할 수 없게 되므로 사건의 결론 자체가 달라진다. 하지만 고소취하나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는 피해 회복과는 다른 개념이다. 피해 회복은 범행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실제로 어느 정도 복구되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금전 지급이나 원상회복, 손해배상, 명예회복 조치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결국 범죄로 인해 발생한 결과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바로잡혔는지를 평가하는 개념이다. 반면 고소취하나 처벌불원은 피해자의 의사에 관한 문제다.
피해회복의 방식은 범죄의 본질에 따라 달라진다. 필자가 자주 접하는 분양 현장의 형사 책임이나 전세 사기 같은 재산 범죄에서는 단연 금전적 손해의 보전이 최우선이다. 피해 금액의 전부 혹은 일부라도 신속하게 변제하는 것이 양형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반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처럼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범죄도 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퍼지는 허위 사실은 삭제하더라도 낙인이 남는다. 이런 사건에서는 돈을 주는 것만으로 피해가 회복되지 않는다. 재판부는 게시물 직접 삭제, 언론사 정정보도 요청, 정정문 게재 및 진심 어린 사과문 게시 등 가해자가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행한 행동을 중요하게 살핀다. 액수보다 가해자의 태도와 노력을 읽는 것이다.
의뢰인들이 던지는 단골 질문 중 하나는 “합의금이 보통 얼마인가요?”다. 하지만 형사합의에 ‘통상적인 시세’는 없다. 구조가 완전히 같은 사건이라도 합의금은 수배에서 수십 배까지 차이 난다. 피해자의 경제적 사정, 감정의 골, 가해자의 태도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의 액수만 고집하는 접근은 협상 테이블에서 무력하다.
형사합의는 정해진 시세가 있는 거래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설득 과정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피해자 역시 현실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합의를 거부하고 민사소송을 선택할 수 있지만 민사 절차는 생각보다 길고 지루하다. 비용과 시간이 막대하게 소요되며 결과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실무상 배상명령신청 제도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배상명령은 요건이 까다롭고 인정 범위가 제한적이다. 형사합의보다 반드시 유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형사 사건에서 합의가 좌절되는 원인은 법리적 쟁점이 아니다. 대개 감정의 문제다. 피해자의 분노와 가해자의 억울함이 부딪히면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형사 송무를 수행하다 보니 결국 합의야말로 양 당사자 모두에게 가장 유리한 종착지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해자는 형사처벌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피해자는 보다 신속하고 확실하게 실질적인 배상을 받는다. 지루한 법적 공방으로 인한 시간적, 경제적 부담도 막아준다. 대리인과 긴밀히 소통하며 현실적인 퇴로를 찾아가는 편이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다.
진정한 합의는 처벌불원서 서류 한 장을 받아내는 기술이 아니다. 피해자의 마음을 돌리고 실질적인 피해를 메워가는 치유의 과정이다. 이것이 오늘날 형사재판부에서 합의를 가장 중요한 양형 요소 중 하나로 평가하는 진짜 이유다.
법무법인 호암 서인석 변호사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