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는 기억력 저하만으로 시작되지 않을 수 있다
치매라고 하면 대부분 “방금 한 말을 잊어버리는 증상”만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치매 초기에는 기억력뿐 아니라 입맛 변화, 걸음걸이 변화, 수면 중 이상 행동처럼 몸의 변화로 먼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뇌는 기억만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라 냄새와 맛을 느끼고,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며, 수면 중 행동을 억제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 그래서 뇌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면 평소와 다른 식습관, 느려진 움직임, 심한 잠꼬대 같은 신호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둔해진 입맛은 후각과 미각을 담당하는 뇌 기능 변화와 관련이 있다
갑자기 음식 맛을 잘 못 느끼거나 예전보다 간을 세게 해야 맛있게 느껴진다면 단순한 노화나 입맛 변화로만 볼 수 없다. 맛을 느끼는 능력은 혀뿐 아니라 후각, 기억, 감정, 뇌의 해석 과정이 함께 작용한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루이소체 치매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서는 후각 저하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타날 수 있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 음식의 풍미도 약해지기 때문에 입맛이 둔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치매 초기에는 식습관이 바뀌거나 단 음식만 찾는 변화, 익숙한 음식을 낯설어하는 모습도 나타날 수 있다. 서울대병원 건강정보에서도 치매 증상에는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식이 변화, 수면 장애, 보행 장애 같은 신체·행동 변화가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변화가 갑자기 나타나고 지속된다면 뇌 건강 점검이 필요하다.

갑자기 느려진 걷는 속도는 뇌와 근육의 연결 기능 저하를 보여줄 수 있다
걷는 속도는 단순히 다리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뇌가 방향을 판단하고, 균형을 잡고, 근육에 신호를 보내야 정상적인 보행이 가능하다. 그래서 평소보다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지거나 보폭이 줄고, 발을 끌거나 자주 넘어질 것 같다면 뇌 기능 변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인지기능 저하가 시작되면 걷는 동안 주변을 판단하고 몸을 조절하는 능력도 함께 떨어질 수 있다.
느려진 보행은 노년기 건강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꼽힌다. 보행 속도가 떨어진 사람은 근감소증과 낙상 위험뿐 아니라 인지기능 저하 가능성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치매는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만 손상시키는 질환이 아니라 전두엽, 기저핵, 소뇌와 연결된 운동 조절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보기에도 “예전보다 걸음이 확 느려졌다”, “방향 전환이 둔해졌다”, “계단을 무서워한다”는 변화가 생겼다면 단순 체력 저하로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이유 없는 잠꼬대는 렘수면행동장애와 관련될 수 있다
잠꼬대 자체가 모두 치매 신호는 아니다. 하지만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팔을 휘두르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꿈속 행동을 실제로 따라 하는 정도라면 렘수면행동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렘수면 중에는 몸의 근육이 이완되어 꿈을 꿔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꿈에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장면을 실제 몸동작으로 표현하게 된다.
렘수면행동장애는 파킨슨병이나 루이소체 치매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진은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 162명을 평균 7.7년 추적한 결과,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주요 인지기능이 점진적으로 저하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국제 연구에서도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 상당수가 장기간 추적 관찰 중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진행한 것으로 보고됐다.

세 가지 신호가 함께 나타난다면 치매 검사를 미루지 않는 것이 좋다
입맛이 둔해지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잠꼬대가 심해지는 변화가 각각 따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세 가지가 동시에 또는 짧은 기간 안에 함께 나타난다면 뇌 건강 이상 신호일 수 있다. 특히 가족이 보기에 성격이 달라졌거나, 말수가 줄었거나, 약속을 자주 잊거나, 익숙한 길에서 헤매는 증상이 함께 있다면 치매 선별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치매는 조기에 발견할수록 진행 속도를 늦추고 생활습관을 조정할 기회가 많아진다. 중앙치매센터도 초기 치매에서는 최근 일을 자주 잊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안내한다. 여기에 보행 변화나 수면 이상, 식습관 변화가 동반된다면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 치매안심센터 상담을 통해 정확한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국내 사례
실제로 국내에서는 치매안심센터와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기억력 검사뿐 아니라 수면 습관, 보행 변화, 식습관 변화까지 함께 확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윤인영 교수팀은 렘수면행동장애 환자를 장기간 추적해 인지기능 저하와의 연관성을 확인했으며, 국내 의료진들은 심한 잠꼬대나 꿈 행동화가 반복되는 경우 단순한 잠버릇으로 넘기지 말고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전국 치매안심센터에서는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치매 선별검사를 지원하고 있어, 가족이 평소와 다른 입맛 변화나 걸음걸이 변화, 수면 중 이상 행동을 발견했다면 가까운 센터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